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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도로 격화하는 중국과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갈등이 세계 각국의 관심을 끌고 있다. 관심이 클수록 고민도 깊다. 고민의 정체는 이미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직후 우리가 경험한 바로 그것이다. 달라진 중국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거칠게 호주를 몰아세우는 중국의 포석은 복합적이다. 조 바이든 차기 미국 행정부 출범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바이든 당선자는 대중국 정책의 핵심으로 ‘동맹 복원’을 내세웠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행태로 파편화한 동맹의 가치를 되살려, 중국에 맞서는 연합전선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동맹과 연합한 미국과 본격적인 대결 구도가 형성되면 중국으로선 부담이 배가될 수밖에 없다. 호주는 영어권 5개국 정보동맹인 ‘파이브아이즈’와 중국을 겨냥한 비공식 전략포럼 ‘4자 안보대화’(쿼드) 회원국이다. 두 기구에 모두 이름을 올린 것은 호주와 미국뿐이다. 호주가 아시아·태평양 일대에서 미국의 ‘대리인’으로 여겨져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니 중국의 ‘호주 때리기’는 이중적이다. 첫째, 미-중 대결 구도가 본격화하기 전 미국 대신 호주를 때리는 ‘대리전’이란 측면이 있다. 둘째, 미국의 잠재적 동맹국에 “잘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경고하는 전초전이란 성격도 있다. 중국과 호주의 관계는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호혜적 양자관계의 ‘모범사례’로 꼽혀왔다. 호주는 1972년 일찌감치 대만 대신 중국을 승인하고, 이듬해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미국보다 6년여 빠른 시점이다. 1970년대 식량부족 사태를 겪던 중국의 최대 수입품은 밀이었지만, 중국이 미-중 수교 이후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면서 빠르게 바뀌었다. 경제개발 초기 중공업 건설에 나선 중국에 안정적인 철광석과 석탄 조달은 최우선 과제였다. 1985년 자오쯔양 당시 중국 총리가, 1986년엔 후야오방 당시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호주를 방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특히 후 총서기는 밥 호크 당시 호주 총리와 함께 최대 철광산지 가운데 하나인 필버라 일대를 둘러보기도 했을 정도다. 이후 호주산 철광석과 석탄은 중국의 급속한 공업화의 든든한 배후가 됐고, 호주 역시 원자재 수출로 장기 호황을 구가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지방정부 간부 시절부터 집권 이후까지 모두 다섯차례나 호주를 방문한 바 있다. 시 주석은 중국 역대 지도자 가운데 호주 6개 주를 모두 둘러본 유일한 인물이다. 2014년 11월 방문 때는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당시 시 주석은 “역사적 원한도, 근본 이익 충돌도 없는 중국과 호주야말로 진정한 동반자”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양국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2015년 12월 중국-호주 자유무역협정 발효 이후 호주 내부에서 중국에 대한 지나친 경제 의존도에 대한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의 공세적인 대호주 정책도 우려를 키웠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긴장감이 높아지더니 2018년부터 본격적인 파열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2018년 들어 호주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5세대(5G) 참여를 배제했다. 호주 국내 정치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기 위해 ‘외세개입 금지법’까지 마련했다. 냉각기로 접어든 양국 관계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올해 들어 폭발적으로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지난 4월 호주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기원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를 제안하고 나선 게 발화점이었다. 중국은 지난 5월 호주산 보리에 80.5%의 반덤핑관세를 부과하고, 호주 4대 도축업체가 가공한 소고기 수입을 중단시켰다. 호주를 겨냥한 무역보복의 신호탄이었다. 이어 석탄·면화·목재·해산물·구리 등 각종 호주산 상품에 대한 수입제한 조처가 이어졌고, 지난달 말에는 호주산 포도주에 최대 200%가 넘는 반덤핑관세까지 부과했다.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호주로선 감당하기 벅찬 상황으로 몰리게 됐다.
중국은 이미 지난 2008년 일본을 제치고 호주의 1대 교역국으로 떠올랐고, 이듬해 호주의 최대 수출시장이 됐다. 호주 통계청이 지난 9월 말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9~2020회계연도 호주 상품 수출의 39%, 수입의 27%를 중국이 차지했다. 반면 호주가 중국의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단 1.9%에 불과하다. 무역보복이 지속되더라도 중국은 큰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호주의 국내총생산은 6%가량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중국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지난달 17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일본을 방문해 스가 요시히데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쿼드 참여국인 양국은 이날 ‘공동훈련 등에 관한 군사협정’(RAA)을 체결했다. 협정에 따라 호주군의 일본 주둔 가능성이 열렸고, 양국군이 공동훈련을 위해 상대국에 들어갈 때 무기·탄약 반입 절차도 간소화됐다. 일본이 외국군 주둔을 허용하는 협정을 체결한 건 1960년 미-일 군사협정 이후 처음이란 점에서 쿼드의 ‘아시아판 나토화’를 우려해온 중국으로선 ‘도발’로 받아들일 만했다. 이튿날인 11월18일 <시드니 모닝 헤럴드>를 비롯한 호주 매체 여러 곳이 호주 주재 중국대사관이 노골적으로 유출한 내부문건인 이른바 ‘14개 불만사항’을 보도했다. 화웨이 배제와 코로나19 기원 조사 제안, 홍콩·신장위구르 인권 문제 거론 등 중국이 호주에 불만을 품어온 사안이 조목조목 거론됐다. 같은 날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상호 존중과 평등한 대우는 양자관계의 실질적 협력을 위한 기초다. 중국-호주 관계 악화의 근본 원인은 호주가 중국의 핵심이익과 주요 관심사에 대해 지속적으로 잘못된 행위와 발언을 하고, 도발적이고 대결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강압적 외교행태인 이른바 ‘늑대전사(전랑) 외교’를 대표하는 자오 대변인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문제를 일으킨 쪽이 해결도 해야 한다. 호주는 구체적 행동을 통해 실수를 바로잡고, 양국 협력을 위한 우호적 분위기와 조건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호주의 ‘반성’과 ‘사죄’를 요구한 셈이다. 호주 내부에서 “호주가 민주국가란 점 자체를 문제 삼은 것”이란 비난이 쏟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상황은 호주에 한참이나 불리해 보인다. 중국이 호주산 포도주에 고율관세를 부과했을 때 ‘연대의 뜻’을 밝힌 것은 ‘중국정책 다국적 의회연맹’(IPAC) 정도가 고작이다. 19개국 국회의원 200여명이 개인 자격으로 참여해 지난 6월 설립된 이 단체는 대안으로 “호주산 와인 소비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중국은 여유가 있어 보인다. 무역보복 조처를 한 호주산 상품의 대체 수입처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다, 이를 중국의 영향력을 넓히는 지렛대로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호주의 대체 수입처에는 호주와 이른바 ‘가치관을 공유하는 국가’도 포함된다. 유엔 주재 싱가포르 대사를 지낸 빌라하리 카우시칸은 지난 5일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중국은 호주의 ‘정치적 의지’를 꺾을 수만 있다면 인도·태평양 지역 미국의 우호국과 동맹국 사이에 ‘의심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호주가 중국의 압박에 굴복한다면, 이를 주의 깊게 지켜본 다른 나라들도 자국의 입장을 다시 한번 고려할 것이다.” 그러니 중국의 ‘호주 때리기’는 향후 국제질서의 향방을 점쳐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일 수 있다. 동맹 복원을 통한 대중국 견제를 추진하는 바이든 행정부로선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카우시칸 전 대사는 “중국이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분명히 하고 원칙을 충실히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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