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내전 10주년 3회 기획 中
반대파 ‘테러리스트’ 몰아 제거
통제·인권말살 전 국민 감시·처벌
인구 1%가 정보원…대통령 비판 감시
군·권력기관에 ‘운명공동체’ 내 편 심어
주저하지 않고 국민 학살 감행 유도
거짓말과 뻔뻔함으로 장기독재 이어
‘재생’ 의미 바트당. 63년 쿠데타 집권
사회주의에 아랍민족주의 결합
대기업 국유화하며 권력자 개인 금고화
언론·의회, 대통령·정부 비판 원천 금지
바트당·알아사드 독재 겹쳐 해결 어려워

2017년 6월 30일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교외의 반군 점령 지역 상공에서 시리아 공군의 소련제 수호이-22 전투기가 민간인 거주지역에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악마적 인권유린으로 '국가적 트라우마'

시리아 서북부 반정부군 장악 지역인 이들리브에서 지난 3월15일 시리아 내전 발발 10년을 맞아 주민들이 행진화는 가운에 한 남자가 미국 국기와 '당신들의 인권 가치와 민주주의 수호정신은 어디에 있느냐'는 글을 들어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처럼 시리아 내전은 개인숭배·권력세습·학살·고문·반인권·반인륜·폭압정권의 실체를 확인한 ‘악마와의 싸움’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잔학 행위를 저질러온 ‘인간 도살자’가 어떻게 2010년 12월 시작된 중동 민주화 바람인 ‘아랍의 봄’을 멈춰 세우고 지난 10년을 버틸 수 있었을까.

시리아 서북부 반정부군 장악 지역인 이들리브에서 시ㅐ리아 내전 10주년을 맞기 하루 전인 지난 3월 14일 주민들이 거리에 10이란 숫자와 국기 그림으로 장식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독재권력 유지 4대 수법까지 세습
첫째, ‘낙인찍기와 잔학행위다’다. 알아사드 집안은 지지자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국민을 서로 갈라치기한다. 알아사드는 자신의 권력 기반인 ‘아랍 사회주의 바트당’ 지지자와 같은 종파인 이슬람 알라위파 외에는 테러리스트로 여긴다. 국민이라도 권력에 대항하거나,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정부 정책에 반대하거나 의문을 표시하는 반대파는 설득이나 공존을 추구할 대화 상대가 아니라 제거 대상인 ‘테러리스트’로 몰아세운다. 반대파를 국민으로 여기지 않고, 테러리스트나 살인자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화내고 비난하며 그들을 겁주는 건 물론이고, 잔혹하게 학살하고 제거할 대상으로 여긴다. 알아사드 세습 독재정권은 내전은 물론 그 전에도 이런 성향이 강했다.
둘째, ‘고도 통제’다. 전 국민을 속속들이 감시하고 처벌하는 『1984년』 방식의 사회를 만든다. 이런 사회에선 영장 없는 임의 동행, 재판 없는 구금이나 고문, 처형이 다반사다.

시리아의 세습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와 부인인 아스마(왼쪽부터)가 지난 2020년 7월 19일 다마스쿠스의 투표소에서 총선 투표하고 있다. 이 부부는 최근 코로나19 양성으로 드러나 격리 중이다. AP=연합뉴스
넷째, ‘거짓말과 뻔뻔함’이다. 독재를 민주주의로 미화하고, 부정선거를 해놓고 공정하다고 자랑한다. 견제할 언론도, 야당도 없는 집권 바트당과 독재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시리아의 세습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안과의사로 영국 런던에서 수련을 받다가 세습 예정자여쑈던 형의 교통사고 사망으로 귀국해 후계자가 됐다. 로이터=연합뉴스
반대파는 ‘테러리스트’ 낙인 찍어 학살
그가 권력을 유지해온 방법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도전을 받으면 그 몇 배로 갚았다. 유혈극은 1979년 6월 북부 대도시 알레포의 군 포병학교에서 시작됐다. 무슬림 형제단 소속의 이슬람 수니파 장교들이 하페즈 알아사드 대통령과 같은 종파인 이슬람 알라위파 생도 50~83명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하페즈 알아사드는 이 학살에 가담한 수니파 장교 15명을 체포해 모두 처형했다. 이 사건은 수니파 중심의 이슬람주의자들과 알라위파 중심의 알아사드 지지 세력이 사이에 벌어진 오랜 무장 분쟁의 시작이었다.
1980년 3월 서북북 도시 지스르 알슈구르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해 집권 바트당 사무소가 점거되자 하페즈 알아사드는 특수부대를 보냈다. 무장 헬기에서 로켓탄을 발사하고 지상에선 박격포를 쏘아댔다. 이어서 참가자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과 색출 작전을 벌였으며 체포한 사람은 모두 현장에서 즉격 처형했다. 이 사건으로 150~200명이 숨졌다.

지난 2018년 4월 16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근처의 두마에서 시리이 당국이 주민들에게 구호 식량을 나눠주고 있다. 이곳은 시리아군이 독가스를 살포했던 곳으로 의심받는 지역이다. AP=연합뉴스
![1970~2000년 시리아 대툥령을 지내고 자리를 아들인 바샤르에게 물려준 독재자 하페즈 알아사드.[위키피디아]](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3/21/c909ef27-ec6a-4c47-86eb-afef8f21bac6.jpg)
1970~2000년 시리아 대툥령을 지내고 자리를 아들인 바샤르에게 물려준 독재자 하페즈 알아사드.[위키피디아]
암살 시도 뒤 학살로 대응
암살 시도 다음날 하페즈의 동생이자 시리아군 사령관인 라파아트 알아사드(83·1975~1998년 군사령관, 1984~1998년 부통령)이 중부 사막의 팔미라에 있는 타드모르 감옥에 병력을 데려가 수감된 무슬림 형제단 관련자 5000~1000명을 학살했다.
이어 1981년 4월에는 중서부 도시 하마에서 무슬림 형제단의 소요 사태가 발생하자 군대를 파견해 400명을 학살했다. 이는 서곡에 지나지 않았다. 이듬해인 1982년 2월 하마에서 다시 대규모 반란이 벌어지자 정예 기갑사단과 특수부대 등 3만 병력을 보내 도시를 27일간 포위하고 무차별 포격을 가했다. 공군을 동원해 도시를 대대적으로 폭격하기도 했다. 그 결과 2000~4만 명이 사망했다. 독재자가 반란군을 잡는다며 군대를 동원해 도시를 폭격·포격한 이 사건으로 하페즈 알아사드는 시리아는 물론 중동 전역에서 악명을 높였다. 동생 라파아트가 하마 학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본인은 이를 부인해왔다.

2018년 3월 15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근처의 두마라는 마을에서 시리아 정부가 빵과 채소, 그리고 파스타를 배급하고 있다. 사회주의와 아랍민족주의를 결합한 바트주의를 국가 이념으로 내건 시리아는 농토와 소규모 자업업만 개인이 소유하고 대기업을 정부가 소유하고 그 대신 기본 생필품을 배급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익은 권력자와 바트당원과 공무원 손에 들어가고 국민은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들에게 잔혹 대응 세습
바샤르가 집권한 뒤인 20004년 4월 북부 쿠르드족 거주지인 카미실리에서 쿠르드족과 시리아 아랍인 축구팀이 원정 경기를 하는 동안 아랍인들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 사진을 들고 나온 게 발단이 돼 관중들이 싸움을 벌였다. 후세인은 이란-이라크 전쟁 말기인 1988년 2월부터 9월 사이에 자국의 쿠르드족 거주지인 안팔에서 독가스까지 동원하는 학살극으로 쿠르드족 5만~18만 2000명을 인종 학살했다. 아랍인들이 이 비극을 연상시키면서 축구팀을 응원하자 쿠르드족은 폭발했다. 싸움을 말린다고 경찰은 물론 군대까지 출동하자 쿠르드족은 하페즈 알아사드 전임 대통령의 동상을 쓰러뜨리며 응수했다. 시리아군은 헬기와 전차까지 동원해 쿠르드족을 공격해 30~100명이 숨졌다.

영국 유학파인 바샤르 알아사드와 부인 아스마. 서구에 유학을 다녀왔음에도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시장경제의 가치를 실천하지도, 이해하지도 않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EPA=연합뉴스
영국 유학파 바샤르가 유혈 내전 일으켜
바샤르는 영국에서 안과 수련의로 일하면서 서구의 교육을 경험했다. 원래 후계자 수업을 받던 형 바셀이 1994년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갑자기 권력을 이어 받았다. 바샤르의 부인 아스마도 영국에서 태어나 킹스칼리지 런던에서 컴퓨터 공학과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뒤 미국 하버드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받고 투자은행에 근무한 경력이 있다. 이에 따라 2000년 부친의 권력을 이어 받았을 때 독재를 완화하고 부분적인 민주화를 이룰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그는 결국 21세기 재앙이라는 시리아 내란을 부른 인물이 됐다. 서구에서 교육 받아도 독재자의 권력을 세습받으면 독재자가 되기 쉽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독일 베를린에 살고 있는 시리아 난민 와파 알리 무스타파가 시리아 군경에 끌려갔다가 행방불명된 아버지의사진을 안고 있다. EPA=연합뉴스
시리아를 감시와 처벌의 감옥으로
2010년가지 인구 2100만 명인 시리아에서 정보요원만 15만 명이 넘었던 걸로 추정된다. 정보기관 끄나풀도 곳곳에 깔아 놨다. 몇 푼만 주면 동네 사람들이 찻집에서 한 우스갯소리까지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는 인간 도청장치다.
‘존엄한’ 대통령에 대해 예의를 차리지 않거나 불평을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간다. 정부에 불만을 말해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곧 정부이기 때문이다. 끌려가면 몇 달간 감금·고문을 당하다 불귀의 객이 되기도 한다. 시리아에서 영장이나 공정한 재판, 변론권은 흔적 기관에 불과하다. 국제 앰네스티는 탈출한 민주화 운동가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고문용 안가의 존재를 보고했다. 고문이 일상화됐으며 용의자는 보안요원이나 경찰, 군인이 요구하는 대로 답해야 했다.

2017년 1월 20일 시리아 정부군과 반정부군이 치열한 교전을 벌였던 동아레포의 거리. AP=연합뉴스
1~3분 재판에 2~3시간 구타 뒤 처형
희생자들은 처형 직전 다마스쿠스에 있는 카분 지역의 군사법정에 끌려가 재판관이 묻는 “이런 범죄를 저질렀느냐”는 질문에 “예”와 “아니오” 밖에는 대답할 수 없는 재판을 1~3분에 걸쳐 받은 뒤 사형을 선고 받는다. 그런 다음 감옥에 이송되며 사형 당일 집행을 통보받은 뒤 지하실로 이송돼 2~3시간 동안 구타를 당한 다음 교수형으로 처형됐다. 앰네스티는 집행 과정의 소음이 사형대 윗층에 있는 감방의 그대로 전달돼 수감자들이 공포에 시달렸다는 전했다. 이 교도소에선 매주 또는 2주에 한 번꼴로 하루에 20~50명이 처형됐다. 시신은 군 병원으로 보내져 확인 절차를 거쳐 군이 관할하는 부지에 집단 매장됐다. 이런 대량 처형에는 시리아 고위층에 직접 관련됐다는 것이 앰네스티의 결론이다. 물론 시리아 정부는 이런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지난 2016년 12월 5일 동알레포에서 반정부군이 정부근 진지를 향해 사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군 요직은 독재자와 같은 종파에게 맡겨
시리아에서 군은 독재 권력과 공동 운명체다. 아사드 집안과 같은 종파인 알라위파 출신에게만 실권을 주기 때문이다. 시리아 국민 70%가 수니파 이슬람 교도인데 그 중 10%가 시아파와 가까운 알라위파다. 시리아정교를 비롯한 기독교도가 나머지다.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이 아사드 정권 편을 드는 까닭이다.
알아사드 집안의 독재정권은 교묘했다. 직업군인의 70%, 장교의 80%를 알라위파로 채웠다. 징집 군인의 대부분인 수니파 출신은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걸 주저한다. 초기 시위대 사살을 거부하고 탈영한 군인은 대부분 이들이다. 하지만 알라위파 직업 군인들과 장교들은 다르다. 이들은 정권과 생사를 같이할 수밖에 없다. 정권이 무너지면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받게 되니 아무리 잔혹한 명령이라도 따른다. 이 분열의 고리를 깨지 않으면 사태 진전이 어렵다.

2016년 4월 12일 시리아 총선이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 선거가 아니고 총선인데도 투표장에 온통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있다. 알아사드는 집권 바트당의 서기장이기도 하다. 개인숭배는 시리아 정치의 특징이다. AP=연합뉴스
눈여겨 볼 점은 종파라는 낱말을 출신성분으로 바꾸면 시리아와 북한은 그야말로 판박이라는 사실이다. 시리아는 북한의 타산지석이다. 한반도 미래를 위해서도 시리아가 가는 길을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지난 2020년 3월 24일 코로나19가 막 유행하기 시작한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의 거리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사진이 여기저기 걸려있다. AP=연합뉴스
바트당 통해 거짓과 뻔뻔함의 독재 정치
시리아는 강력한 독재 체제다. 정부가 반정부 시위를 유혈 진압하면서 내전을 촉발한 시리아는 2012년까지는 ‘실질적인’, 2012년 개헌 이후로는 ‘사실상의’ 일당독재 국가다.
최고권력기구는 바트당이다. 2012년까지는 “바트당이 국가와 사회를 지도한다”고 헌법 제8조에 못 박아 놨다가 그해 2월 26일 국민투표를 거쳐 다당제로 바꿨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니 형식적일 뿐이다. 250석으로 이뤄진 다원제 의회 격인 인민회의(마질리스 알샤아브)는 2012년 5월 선거에서 집권당 연합인 국가진보전선이 168석을 차지했으며 이 가운데 134석이 바트당 소속이다. 비(非바)트당 연합인 ‘변화와 자유를 위한 인민전선’은 6석, 무소속이 77석을 차지했다. 2016년 총선에선 국가진보전선이 200석을 차지했고 이 가운데 172석이 바트당이 가져갔다. 인민전선과 무소속이 50석을 차지했다. 코로나19 와중에 치른 2020년 총선에선 국가진보전선이 183석, 인민전선과 무소속이 67석의 분포였다. 게다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어떤 정당이나 의원도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선거제도도 독특하다. 유권자는 15개 중선거구에서 여러 정당과 종교집단의 후보 명단이 합쳐진 ‘정당 블록’에 투표한다. 바트당이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절반은 농민·노동자로 채우게 하고 있다. 말이 선거이지 다양한 정파 소속이 국민의 선택으로 당선하는 길을 처음부터 막혀있다.
바트당의 구호인 ‘단결·자유·사회주의’는 곧 시리아의 모토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은 바트당에서 간선으로 뽑다가 2012년 개헌 뒤론 바트당이 추천하고 의회가 추인한 단일 후보를 국민이 찬반 투표한다. 대통령은 바트당 사무총장을 겸임한다. 바트당과 10개 허수아비 정당과의 허울뿐인 집권 연정(국민진보전선)의 지도자도 겸임한다. 시리아 바트당은 1963년 군사쿠데타 이후 지금까지 58년간 집권해 왔다.

F지난 2017년 1월 16일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의거리에서 한 어린이를 포함한 주민들이 공동 수도에서 물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랍식 사회주의, 독재자만 만들어
원래 아플라크와 알비타르는 프랑스공산당을 추종했지만 아랍인들의 희망과 달리 민족해방보다 무산자 계급투쟁에 치중하는 데 염증을 느끼고 사회주의를 아랍화했다. 바트주의는 아랍의 전통 가치를 존중했다. 수니·시아·알라위 등 모든 무슬림 종파와 시리아 정교를 비롯한 기독교까지 모든 종교 전통을 인정했다. 농지 등 소규모 사유재산과 상속 등 사회적 전통도 수용했다.
대신 은행·대기업·신문·방송·철도·항만 등 덩치 큰 국가기간사업은 국유화했다. 대기업에 대한 제국주의 세력의 침투를 막고 그 이익을 개발 사업에 쓰면 아랍사회가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아랍세계가 연대해 제국주의에 대항하자고 역설했다. 사회주의의 아랍식 절충이었고, 아랍 방식의 진보사상 도입이었다.

2017년 1월 20일 동알레포에서 두 남자가 배급 식량을 받아 귀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비판 세력 없으니 부패와 가난 시달려

시리아 내전이 10주년을 맞기 하루 전인 지난 3월 14일 독일 베를린의 연방의사당 주변에서 한 시리아 난민이 '10년간의 학살, 시리아인에게 자유와 정의를'이라는 구호와 실종된 가족 사진읋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1970년 시리아 대통령이 된 하페즈 알아사드, 1979년 집권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1937~2006)이 모두 바트주의를 앞세워 철권통치를 했다. 하페즈는 바트당을 집안의 정당으로 변질시켜 아들인 바샤르에게 권력을 세습했다. 바샤르는 국영기업의 돈줄을 바탕으로 군대는 물론 샤비하(악귀라는 뜻)라는 사설 무장세력까지 지원해 독재와 부패에 항의하는 국민을 학살하고 있다. 바트주의의 비극적인 말로다. 시리아 내전은 결국 허울 좋은 이념과 이를 권력 장악과 유지에 이용한 독재자가 벌이는 비극이다. 해결이 어려워 보이는 이유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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