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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불명확했던 ‘탈원전’ 개념
원자력계 불만 달래기로 발목 잡혀
정부 추진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수출
미국 쪽 조건때문에 불가능할 듯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는 한국과 미국이 협력해 해외 원전시장에 진출한다는 ‘원전 수출’ 계획이 담겼다. 원전 기술 강국인 미국과 함께 중동·유럽 등 신규 원전 사업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협력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4년 전 ‘탈원전’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왜 임기 마지막해 ‘원전 수출’을 내세우게 됐을까. 청와대는 물론 원전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모두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는 달라진 게 없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애초 불명확했던 탈원전 개념 △원자력계 불만 달래기 △소형모듈원전(SMR) 산업 추진 물밑작업 등을 이번 한·미 원전 협력의 배경으로 꼽았다.
2017년 5월 더불어민주당이 펴낸 대통령 선거 정책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를 보면 △탈원전 정책 △원전 정책 전면 재검토가 들어 있다.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및 이후 모든 신규 원전 건설 계획 백지화, 노후 원전 수명연장 금지, 월성 1호기 폐쇄, 원전제로시대로의 이행 등이다. 원전업계를 대변하는 <조선일보> 등은 이번 발표를 두고 탈원전과 원전 수출은 ‘모순’이라고 주장하며 탈원전 정책 흔들기에 나섰다. 환경단체 등은 문 대통령이 말하는 탈원전이 독일식 전면폐쇄(2022년 완료)가 아닌 ‘중장기 에너지 전환’ 정도의 의미인데 지나치게 탈원전을 강조하는 퍼포먼스에 치중했다고 본다. 미래의 원전 수요를 줄여나가겠다는 ‘감원전’ 메시지였을 뿐 ‘탈원전’까지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방미 일정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하츠필드 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에서 공군1호기에 탑승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에는 문 대통령이 직접 체코에 원전 세일즈 외교를 하기도 했다. 또 지난 2월 신한울 3·4호기 공사계획 인가를 2023년까지 연장하며 다음 정부에서 공사 중단 여부를 최종 결정하도록 미루는 등 탈원전이라고 말하기 애매한 모습을 보여왔다.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대선 공약 발표 때만해도 탈원전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신규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 등을 중단한다고는 했는데, 원자력 연구나 수출사업은 계속 허용해왔다”고 말했다.
한·미 양국이 기술 협력을 한다면 기술력이 앞선 미국이 부품 제공과 운영을 맡고, 한국은 설계나 제작, 시공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한국 원전 경쟁력은 ‘가성비’에 있다고 강조했다. 한 소장은 “(세계 원전 시장에서)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 원전이 제일 싸다. 이런 장점을 토대로 우리가 갖고 있는 기술을 수출하겠다는 경제적 논리가 바탕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말하자 월성1호기 폐쇄 논란에서 봤듯이 원자력 학계와 원전 관련 기업 등의 각종 불만이 다 터져나왔다. 결국 이번 한·미 협력 역시 정부가 그들의 미래를 우선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인 2018년 원자력 학계·산업계 등이 참여한 ‘원전수출 국민행동 추진본부’가 출범하는 등 원자력계에서는 원전 수출로 눈길을 돌렸다. 앞서 박근혜 정부때 고리1호기를 폐쇄할 때는 아무런 논란이 없었던 것과는 대조적이이다.
고리1호기는 2015년 6월 한국수력원자력이 원전 수명 추가 연장을 시도하다 포기하면서 2017년 6월 영구정지됐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도 이에 찬성했다.
원전수출국민행동 추진본부 관계자들이 2018년 3월2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원전수출 국민행동 출범 기자회견' 을 열고 관련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2018.3.20 kjhpress@yna.co.kr 연합뉴스
만약 원전 수출에 성공한다면 이번 정상회담 결과의 최대 수혜자는 두산중공업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두산중공업은 세계에서 가장 큰 단조기(쇠를 망치로 두드리는 기계)가 있어 원자로를 제작할 수 있다. 원전 관련 장비나 부품을 직접 조달할 수 있는 대표 기업이다. <조선일보> 등은 줄기차게 두산중공업의 적자 행진, 구조조정 이유를 탈원전 정책에서 찾는 기사를 써왔다. 그러나 두산중공업 경영난의 핵심 이유는 10년 가까이 자회사인 두산건설을 돕기 위해 사들인 주식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흐름에 따라 해외 석탄발전·원전발전 수주가 줄어든 탓이 크다.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국내 원전 건설 중단에 따른 손실이 적자로 잡히긴 하지만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이헌석 정의당 기후·에너지정의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두산중공업에 들어간 돈만 보면 공기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전신인 한국중공업을 두산에 매각했는데, 민영화 이후에도 정부는 두산중공업을 활용하고 싶을 것”이라고 했다. 두산중공업에 투입된 긴급운영자금은 지난해 9월 기준 3조6천억원이다.
2018년 3월 26일 오후(현지시간) 건설완료가 된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의 전경. 오른쪽부터 1,2 호기로 이날 1호기 건설완료를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연합뉴스
한국이 원전 수출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산업부 등이 수출 가능 국가로 꼽고 있는 체코나 폴란드 등 동유럽은 러시아와 가깝기 때문에 미국식 원전을 수입하지 않을 가능성이 상존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원전 협력 조건으로 내건 국제원자력기구(IAEA) 추가의정서 비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수출이 어렵다.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는 “한·미가 협력해 원전을 수출할 경우 수입하는 국가가 국제원자력기구 세이프가드 프로토콜을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우라늄농축과 재처리 옵션을 갖고자 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를 거부하고 있어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원전을 수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국내에서 ‘종말시계’를 받아든 원전 업계에서는 최근 소형모듈원전(SMR) 등 새로운 방식의 원전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원전업계는 원전이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라고 주장한다. 최근 문 대통령에게 소형모듈원전 필요성을 강조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2050 탄소중립화 달성을 위해 이미 한국수력원자력 등에서 개발하고 있고, 두산중공업과 미국 뉴스케일사가 진행하고 있는 SMR 기술개발이 가속화될 수 있게 됐다”며 한·미 원전 수출 협력에 환영 뜻을 밝혔다. 이때문에 오는 10월께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등 2050년 탄소중립 로드맵을 완성하겠다고 밝힌 한국 정부가 소형모듈원전 기술 진척 상황, 국내 신규 원전 건설 재개, 노후 원자력 운영 기간 연장 등을 반영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소형모듈원전은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너무 먼 미래기술이고,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까지 고려할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기에 그런 무리수는 던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이번 원전 수출 협력 발표를 두고 환경단체들은 한국 정부의 도덕적 모순을 지적한다. 국내에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위해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를 더이상 짓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개발도상국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한국 기업과 금융이 참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연재해나 기후변화로 인한 안전성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원전을 국내에서만 새로 짓지 않을 뿐 해외 수출은 계속 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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