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시 수낙 영국 재무장관이 올해 예산안이 담긴 '레드 박스'를 들고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3일(현지시간) 리시 수낙(41) 영국 재무장관이 런던 다우닝 11번가에 위치한 관저를 나선 뒤 빨간 가방을 내밀어 보이자,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다. 하원에 보고할 올해 영국 예산안이 담긴 일명 ‘레드 박스’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정부 지출이 많아, 올해 세율을 올려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화제가 됐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시선을 끈 건, 이로부터 이틀 전 영국 재무부가 제작·공개한 동영상 ‘예산(Budget) 2021’이었다.
수낙 장관이 지난 1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린 약 5분 40초 분량의 영상은 그의 시점에서 지난 1년을 돌아보는 내용이다. 각종 조명 및 슬로우 모션 등 화면 효과와 현악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고, 수낙이 중간중간 인터뷰를 한다. 수낙 장관은 “나(I·me)”를 26번 언급하며 재무부가 경제 상황을 얼마나 고민했는지 설명한다. 그가 동네 가게부터 산업 현장 등을 다니며 찍은 사진도 100여장 가까이 나온다. 영상에 보리스 존슨 총리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영국 재무부는 리시 수낙 장관을 주인공으로 제작한 '예산 2021(Budget 2021)' 동영상을 지난 1일(현지시간) 공개했다. 그가 한 가게를 찾은 모습. [리시 수낙 트위터]](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3/07/c5548866-9672-4c9e-adf5-f513bdbe873a.jpg)
영국 재무부는 리시 수낙 장관을 주인공으로 제작한 '예산 2021(Budget 2021)' 동영상을 지난 1일(현지시간) 공개했다. 그가 한 가게를 찾은 모습. [리시 수낙 트위터]
이 영상은 지난 5일 기준 조회 수 86만7000여회를 기록했다. 정치인 관련 게시물로는 유례없는 수치다. 수낙 장관은 이 영상으로 다시 한번 스타 정치인의 자리를 확고히 했지만 일부 비판도 감수해야 했다. 가디언은 4일(현지시간) “보리스 존슨 총리가 정치적으로 안정된 이때 왜 그가 겉만 번지르르한(slick) 영상으로 자신의 브랜드에 투자하려는 지 알 수 없다”는 칼럼을 실었다. 또 한 보수당 의원을 익명으로 인용해 “예산안 발표를 앞두고 지나치게 자기 홍보를 한다”는 지적도 소개했다.
수낙 장관은 그동안 ‘솔직하고 젊은 보수’ 이미지로 꾸준히 인기를 끌었다. 보수당 정치인이지만 코로나19 국면에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무엇이든 해야 한다”며 정부 지출을 늘리는 등 과감한 행보를 보였다. 지난해 12월 글로벌 여론조사기관 유거브(YouGov)에 따르면, 그에게 호감을 표시한 비율은 48%, 비호감은 32%였다. 같은 시기 보리스 존슨 총리가 호감도 35%, 비호감도 54%였던 것과 대조적이다. 조사에서 수낙 장관은 강경 우파 정치인들과 달리 말을 절제하되, 솔직하게 할 말은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리시 수낙(왼쪽) 영국 재무장관은 보리스 존슨 총리를 이을 차기 총리감으로 유력하게 점쳐진다. AFP=연합뉴스
그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지만, 정계에선 유력한 차기 총리감으로 점쳐진다. 보수당 출신으로 고용부 장관 등을 지낸 원로 정치인 노먼 테빗은 지난해 영국 텔레그래프에 “수낙이 다음 총리직을 계승할 것”이라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수낙 역시 매일 7~10명의 보수당 의원들과 아침마다 모여 함께 식사하며 지역 정치를 챙긴다고 한다.
인도계 이민 3세인 그가 영국 정계 서열 2위에 오르기까진 쉽지 않았다. 처음 재무장관으로 지목됐을 때, 힌두교도인 그에겐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다. 수낙은 인도계 이민자 출신으로 각각 의사와 약사였던 부모 아래서 태어났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그는 학교에 다닐 때 어머니의 약국에서 계좌 만드는 걸 도와주면서 경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윈체스터 칼리지와 옥스퍼드대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MBA를 취득한 수낙은 투자 은행인 골드만삭스에서 애널리스트로 근무하다가 나와 헤지펀드 회사를 창업하기도 했다.

리시 수낙 영국 재무장관은 '젊은 보수' 이미지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가 정계에 진출한 건 35세였던 2015년, 외무장관을 역임한 윌리엄 헤이그를 대신해 리치먼드와 북요크셔 지역구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되면서다. 이후 주택 공공자치부 차관과 재무부 차관을 거쳐 지난해 2월 재무부 장관에 올랐다.
수낙 장관은 ‘인도 빌 게이츠’로 불리는 나라야나 무르티의 사위로도 유명하다. 무르티는 인도 3대 소프트웨어 업체 중 하나인 인포시스 테크놀로지의 창업자다. 그의 딸인 아크샤타 무르티와는 스탠퍼드대 재학시절 만나 연애를 했다. 그는 최근 영국 정계의 실세로 부상한 존슨 총리의 약혼녀 캐리 시먼즈와도 친분이 두텁다고 한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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