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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엔터테인먼트법 일지 - 법률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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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법 법률가라 하면 으레 노래 잘 부르고 파티 석상에서 악기 하나쯤은 멋들어지게 연주할 수 있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2000년대 초만 해도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혼을 발표하거나 폭행을 당해 얼굴이 상한 연예인 옆에서 대신 마이크 잡고 설명하는 변호사가 엔터테인먼트법 변호사의 전형적 모습으로 떠올랐다. 연예인 관련 사건을 다루다 보니 연예인과 가깝게 지내거나 본인 스스로 준 연예인급의 예능 기질을 가져야 하는 것으로 고착화한 것이다.

필자의 유학시절 박사(Ph.D) 논문(dissertation) 주제를 정할 때 이야기를 소개한다. 석사 과정(LL.M.)을 마칠 무렵 박사과정 진학을 위해 교수와 면담을 하게 됐는데, 후에 박사심사위원회의 일원이 된 마이클 타운젠드(Michael Townsend) 교수와의 일화이다. 그는 미시간(Michigan) 대학에서 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예일(Yale) 로스쿨에서 J.D.를 취득한 이색적인 경력을 갖고 있다. 로스쿨 교수로서 저작권법, 계약법 등을 가르치면서 수학과 겸임교수( adjunctive professor)로 수학을, 심지어 철학과에서도 강의하는 천재적인 분이었다. 1998년 당시는 도메인네임(domain name) 광풍이 불 때였다. ‘.com’, ‘.co.kr’ 등 확장자를 갖는 도메인네임을 선점(등록)하는, 이른바 도메인네임 사이버스쿼팅(cybersquatting)이 성행하여 당시 변호사였던 필자로서는 관심이 가는 주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타운젠드 교수는 도메인네임은 전화번호 같은 것이라며, 19세기 후반기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대륙횡단 철도가 놓여 미국의 동부와 서부가 하나가 되었을 때 - 그 충격이란 가히 인터넷으로 세계가 하나가 된 것에 비교될 수 있으리라 - 미국 법학자들의 상당수가 ‘railroad law’라는 것에 뛰어들었던 것에 비유했다. 그런데 지금 ‘철로법’을 전공하는 학자가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하며 도메인네임이니 인터넷법(Internet law)이니 하는 것도 마찬가지라 했다. 타운젠드 교수의 말이 사실로 증명되는 데는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았다. 상표법이 적용된 후로 도메인네임 관련 분쟁은 거의 사라졌고, 인터넷법을 전공한다는 이도 찾아보기 어렵다. ‘바퀴를 새로 발명하지 말라’는 격언이 적중한 것이다.

타운젠드 교수는 필자에게 석사학위 논문(LL.M. Thesis) 주제가 무엇이냐고 물었고 필자는 퍼블리시티권(right of publicity)이라고 하니 그게 좋겠다고 했다. 이 주제를 선택한 것은 필자가 변호사 초년병 시절 제임스 딘(James Dean) 유족이 개그맨 주병진과 ‘주식회사 좋은사람들’을 상대로 제기한 우리나라 최초의 퍼블리시티권 침해사건에서 피고 측을 대리한 것이 계기가 됐다. 박사학위 논문의 부제, “Is James Dean A Living Dead Even In Korea?”는 이렇게 붙여졌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법학/실무계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크게 생소하지 않은 퍼블리시티권은 엔터테인먼트법의 핵심적 권리이다. 엔터테인먼트법이란 개념조차 국내에 거의 없었을 1994년 발생한 사건을 계기로 석사/박사 논문을 쓰면서 퍼블리시티권의 근원을 따져 들어가 보니, 프라이버시권에 닿고, 재산권, 인격권, 표현의 자유 등 법학의 핵심적 가치에 두루 연결되는 금맥 같은 주제였다.

이제는 셀리브리티(celebrity)란 말이 회자되고 있지만, 욘사마 이전에는 연예인이란 말이 더 일반적이었고 아이돌은 우리 전통 관념에서 딴따라에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여 한류(韓流)가 우리 산업의 일부가 되기 시작했을 때 필자는 퍼블리시티권이 한류의 핵심적 권리가 될 줄도 모르고 학위논문 주제로 삼은 것이다. 모두에서 언급한 맥락에 필자의 성정을 더해 보면, 필자가 알고는 엔터테인먼트법을 전공할 리는 없었으니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라고나 할까. 에피소드 한 가지를 소개한다. 박사논문에서 ‘한류’라는 말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몰라, 소리 나는 대로 쓰되 이탤릭체로 ‘Hallyu’라고 표기한 후, 주를 달아 ‘Korean culture syndrome’이라고 덧댔다. 지금 같으면 ‘K-pop’이라 간단히 쓰면 될 것을 당시는 그런 단어가 뿌리내리기 전이었기 때문에 구차하지만 부연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귀국 후 퍼블리시티권을 한류에 접목한 논문, “세계시장 관점에서 본 퍼블리시티권 - 한류의 재산권보장으로서의 퍼블리시티권”, 저스티스 2005.8.(통권 제86호)는 그렇게 하여 나온 것이다.

최근 부정경쟁방지법으로 입법적 결실을 했다고 하는 퍼블리시티권은 저작권법 개정안에도 들어 있는데, 권리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관해 여전히 논쟁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재산권 또는 재산권적 속성이 있다는 점에서 필자는 ‘자산유동화’에 빗대 ‘인격의 유동화’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현실 산업계에서는 퍼블리시티권(초상권 또는 초상영리권 등 무엇으로 불러도 좋다)을 출자하여 회사를 설립하기도 하고 이를 이용한 각종 비즈니스가 성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래 인격권으로 포섭할 수 있다고 보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재산권, 권리주체 등 법철학적 난제에 연결된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 볼 때 매우 좋은 주제인 셈이다.

지난여름 쿠팡(Coupang)은 회원 수를 늘리기 위해 두 가지 프로젝트를 가동했는데, 자사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쿠팡플레이에서 손흥민이 소속된 토트넘을 초청해 단독 중계했고, 배우 수지가 등장하는 드라마 <안나>를 제작 방영했다. 세계 최고 선수들이 뛰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거머쥔 손흥민의 인기가 절정일 때 손 선수와 팀이 함께 한국에 와서 국가대표와 친선경기를 벌였으니 경기장이 만석인 것은 당연했다. TV 중계방송을 보려는 사람들의 회원 가입으로 쿠팡플레이는 단숨에 회원 수 1천만을 훌쩍 넘기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사실 이런 전략은 쿠팡이 처음 시도한 것이 아니다. 일찍이 아마존, 페이스북(메타) 등은 미국의 축구(NFL), 농구(NBA), 야구(MLB) 등 프로스포츠 중계방영권을 따내기 위해 ESPN 등 스포츠전문방송과 경쟁한 지 오래됐다. 최근 아마존은 MGM이라는 영화사까지 인수했는데, 이는 제프 베조스(Jeff Bezos)가 했다는 “신발을 팔기 위해서라도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말이 실천에 옮겨진 것이다[남형두, “신발을 위한 영화 - 플랫폼 사업자의 콘텐트 확보에 따른 법적 문제 -”, 경제규제와 법 2018.11.(제11권 제2호, 통권 제22호)].

그러니 쿠팡의 토트넘 초청경기 단독중계는 국내 토종 OTT와의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모바일 쇼핑앱(네이버쇼핑, 11번가 등)을 겨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아마존이 되고 싶은 쿠팡의 비즈니스 전략의 핵심에 축구와 드라마가 있었다는 것은 스포츠/엔터테인먼트가 오늘날 유니콘 기업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거대한 배를 조타하는 것은 작은 키다. 미국 나스닥 시장의 시가총액 기준 1위에서 5위를 차지하고 있는 가파(GAFA: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킬러 콘텐츠라는 사실에 접하고 나면 엔터테인먼트법이 얼마나 중요한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법과 권리에는 양면이 있듯, 쿠팡은 드라마 <안나>로 곤혹을 치렀다. 감독이 제작한 8부작을 임의로 6부작으로 줄여 상영함으로써 감독이 저작권침해로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결국 쿠팡은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감독판 8부작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빅테크 등 플랫폼을 통하지 않고는 창작자와 독자(이용자)가 만나기 어려운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그 예고편을 보는 것 같다.

엔터테인먼트법은 별도의 단행법을 갖고 있지 않기에 영역이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법을 각기 콘텐츠의 생산자, 소비자, 매개(전달)자인 창작자, 이용자, 엔터테인먼트산업(기획사, 방송/통신사, 플랫폼) 간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법으로 이해하면[남형두, “엔터테인먼트법에 대한 새로운 접근 - 주체 측면에서의 이해”, 민사법학 2007.3.(통권 제35호)], 최근 국회 입법과정에서 뜨겁게 논쟁 중인 인앱결제, 망중립성 등도 엔터테인먼트법 영역으로 들어온다. 종래 콘텐츠 중심으로 보면, 음악, 미술, 어문, 게임, 영화, 스포츠 등의 영역으로 뻗어 있고, 매체 중심으로 보면, 기획사(에이전트), 협회, 방송/통신, 플랫폼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법은 늘 새로운 기술에 접목하고 있어(최근 메타버스, NFT 등), 잠시라도 게으름을 피웠다가는 뒤떨어질 수밖에 없는 법 영역이기도 하다. 나아가 위 <안나> 사례에서 보듯 플랫폼이 창작물 유통을 넘어 창작의 형식과 내용까지 쥐락펴락하는 세상은 이미 우리 주변에 와 있다. AI(인공지능)가 만들어낸 작품의 각종 수상 소식은 창작이 인간의 전유 영역인가라는 도전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쯤 되면 엔터테인먼트법을 예능적 소질이 있는 법률가들의 장(場)으로 생각하는 것이 농담이라면 모를까 얼마나 큰 착각인지 알 수 있다. 마침 지난 10월 5일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는 월례발표회 100회를 기념하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2006년에 설립돼 100회의 학술세미나를 이어온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 이용자의 주의(attention)를 끌어모으기 위해 스포츠/엔터테인먼트를 미끼로 사용하는 플랫폼 기업의 전략과 비즈니스 환경은 학회가 지금까지 이룩한 것이 미미하게 보일 정도로 더 크고 넓은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남형두 교수 (연세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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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 2022 at 05:47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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